" 고해하세요. "
평상시와 같이 고해소에 들어온 해일이 성호를 그으며 말했다. 처음 온 사람인가? 반대편 격자너머에 있는 남자는 해일이 있는 방향을 힐끔힐끔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고해하는지 모르는 건가. 아니면 성당에 다닌 지 얼마 안 된 사람인가. 해일은 한 번 더 상대편 남자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 앞에 보시면 어떻게 하는지 순서대로 적혀있어요. 보시고 하시면 돼요. 그리고 죄를 고해하시면 됩니다."
" 아... 저 고해한 지는... 아.... 사실 처음 합니다."
음. 이 정도면 순조로운 편이다. 고해성사는 익명인 데다 칸이 나누어져 있어서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을 거 같지만 사실 아니었다. 오는 신자는 거기서 거기고 대충 누구인지 알 수 있으니 익명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아무리 고해성사에서 있었던 일은 비밀이라지만 선뜻 자신의 죄를 고해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보통은 억지로 쥐어짠 고해인 경우가 많았다. 다 이해하니까 이제 슬슬 고해를 하시지. 해일은 자신답지 않게 인내심을 가지고 남자의 말을 기다렸다. 잠시 머뭇거리던 남자가 격자창에 얼굴을 바싹 갖다 대더니 해일의 얼굴을 보려는 듯 머리를 들썩거렸다.
" 김해일 신부님... 맞으시죠?"
" 네... "
" 이런 질문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혹시 무슨 작전 중이세요? "
" 네? "
뜬금없는 남자의 말에 해일의 언성이 높아졌다. 뭐라는 거야? 해일은 남자의 얼굴을 보려는 듯 격자너머를 째려봤다. 처음 보는 남자는 해일이 모르는 낯선 얼굴을 하고 그를 보고 있었다.
" 아까 밖에서부터 아는 척하고 싶었는데요 혹시 비밀 임무 중이실까 봐. 헤헤헤..."
" 지금 무슨 드라마 봐요? 꿈꿔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한 소리하려는 해일의 말을 자르며 진우가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 저 한진우예요 김해일 대원님. 저 모르세요? "
" 뭐? 뭐라는 거.... 아니 거예요?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
" 2007년 코체니아 공화국. 의료봉사팀에서 만난 천재 의사 한진우. 이래도 기억 안 나세요?
그 순간 해일의 기억이 18년 전으로 돌아갔다.
" 가시면 안 됩니다! "
" 아니 저 그곳에 꼭 가야 해요. 만날 사람이 있다고요. "
" 그 말도 안 되는 공상은 그만 얘기하시고, 드라큘라를 만나러 가겠다니 제정신입니까? "
군복을 입은 해일이 말 안 듣는 꼬맹이를 쳐다보며 딱딱하게 대답했다. 이중권팀장은 왜 이런 말도 안 듣는 애새끼를 나한테 맡긴 거야? 속으로 투덜거리는 해일을 보며 진우가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 저번에 말했잖아요. 여기 어쩌면 드라큘라가 묻혔던 무덤을 발견할 수도 있다고요. "
" 천재라고 그러시더니 정말 괴팍하시네요. 전 당신을 보호해야 하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코체니아 공화국은 지금 전쟁 중이고 소보크지역은 위험지역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절대로 가시면 안 됩니다. "
" 난 갈 거니까 죽든가 말든가 알아서 해요.... 악!!! 왜 때려요! 이거 놔요!! 간다니까? "
진우의 뒷덜미를 잡은 해일이 그를 질질 끌고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낡은 병원은 폭격에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위험한 곳에 있는데 저 미친 의사는 자신의 생명까지 걸고 위험한 지역으로 간다고 우기고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을 최대한 안전히 보호해야 하는 임무를 받은 해일에게 한진우의 존재는 골칫덩이 그 자체였다. 하여간 자기 잘난 줄 아는 인간들이 말은 더럽게 안 들어먹어요. 속으로 투덜거리며 해일이 진우의 몸을 의자에 묶었다.
" 이거 풀어요. 뭐해요. 미쳤어요? "
" 의사 선생님의 안전이 우선입니다. 위험이 해제될 때까지 그 지역에는 못 들어갑니다. "
" 아악!!!!!! 악!!!!!! "
발광을 하는 진우를 내버려 두고 해일이 밖으로 나왔다. 저러다 진이 빠지면 조용해지겠지. 해일은 다시 한번 자신이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한진우의 이력에 대해 다시 한번 복기했다.
과학고 조기졸업, 의대 조기졸업, 학자 집안의 외동아들. 그야말로 그린듯한 천재. 성격은 천재답게 괴팍하고 엉뚱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끝까지 해야 하는 성격. 그리고 말이 많았다... 정말.
해일은 진우와 다니는 며칠 동안 귀가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보통 이런 곳에 있는 사람들은 흥분과 불안 공포로 말이 많이 없었다. 하지만 한진우란 의사는 겁이란 게 없는 사람 같았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거기다 얼마나 엉뚱하고 호기심은 많은지 위험지역을 가리지 않고 돌아다녔다.
학계에 중요하신 분 아들이니까 잘 보필하라는 중권의 말에 해일이 속으로 코웃음을 쳤었다. 이런 곳까지 와서 특별대우를 해야 하나. 사람의 생명이 공평한 이곳에서 해일이 특별히 한진우를 챙길 이유가 없었다.
곧 해일은 중권이 따로 한진우란 사람을 챙기라고 했던 이유를 알았다. 알고 시켰는지 모르고 시켰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호기심덩어리는 참 손이 많이 갔다. 그나마 악의 없는 천진한 장난꾸러기라 다행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벌써 해일에게 몇 대 맞았을 것이다.
" 대원님!!! "
안에서 들리는 소리를 무시하고 해일이 눈을 감고 벽에 기대 서 있었다.
" 김해일 대원님!!! "
우는 소리를 하는 진우의 목소리에도 해일은 못 들은 척 가만히 서 있었다. 아무리 불러봐라 내가 들어가나.
하지만 30분이 넘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결국 해일이 질려 문을 열었다. 목이 터져라 해일의 이름을 부르던 진우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의 얼굴을 보더니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안된다니까 이 양반아. 해일이 팔짱을 낀 채로 삐딱하게 기대서있자 진우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 드라큘라병이라고 들어봤어요? "
" 아니요. "
" 당연히 못 들어보셨겠죠.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희귀병이거든요. 병명은 VBT-01 , 바이러스 감염에 가까운 병이에요. 현실에 존재하는지도 의문스러운 희귀병이죠. "
" 그렇... 습니까... "
" 전 그 병에 걸린 사람을 조사하고 있어요. 여기 옛날에 그 병에 걸려 감염되었다가 죽은 사람들의 무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온 겁니다. "
답지 않게 진지한 진우의 이야기에 해일도 곧 빨려 들었다. 세상에 그런 희귀병도 있었나?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라 여겼기에 해일은 잘 모르고 있는 병이었다. 그런데 저 의사선생은 왜 그 병에 관심이 있는 거지?
" 혹시 의사 선생님이 그 뭐 V.... 아니 드라큘라병이십니까? "
" 아니에요. 그럼 내가 대낮에 못 돌아다니지. 그 병에 걸리면 햇빛에 취약해져요. 낮에도 머리까지 후드들 푹 덮어쓰고 다녀야 된다고요. 아예 낮에는 안 다니면 더 좋고. "
" 그럼 지인이 혹시? "
" 아 이 사람 진짜 인류애가 없네. 나랑 관계없으면 그냥 끝이에요? 내가 의사예요. 의사. 의사가 병에 관심이 없으면 누가 관심을 가져요? "
그렇다고 해도 이상했다. 의사도 전공이 있었다. 호기심하나로 이 전쟁터까지 드라큘라병에 대해 조사하러 오는 의사라니 뭔가 수상했다. 해일이 진우보다 천재는 아니었지만 동물적인 감각은 그보다 더 뛰어났다. 진우가 이곳에 온 것이 인류애가 전부가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 무덤이라면 더 가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분쟁이 사그라들 때까지 기다리거나 다음에 가시면 됩니다."
해일의 말에 진우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다시 올 기회가 쉽사리 생길 리가 없었다. 해일의 말대로 전쟁지역에 의료봉사라는 명목으로 겨우 왔던 것이라 이번에 꼭 그 무덤을 봐야 했다.
" 대원님, 요원님, 해일님. 진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최고의 군인. 제발 한 번만 도와주세요. 네? "
되겠냐? 진우가 무슨 말을 해도 해일은 못 들은 척 반응이 없었다. 와 진짜 왜 저렇게 철벽이야? 진우는 입을 삐쭉거리더니 해일이 묶어놓은 손을 꼼지락거렸다. 이거라도 풀어야지 나중에 기회를 봐서 그 무덤을 보러 갈 수 있었다.
" 그럼 이거라도 풀어봐요. 안 갈게요. 네? 안 갈게요. "
어디서 거짓말을.... 팔짱을 낀 채 손가락으로 팔을 툭툭 건드리던 해일은 결국 한숨을 쉬더니 진우를 풀어주었다. 사고를 칠게 뻔해 보였지만 언제까지 묶어 놓을 수도 없었다. 놔두면 오늘 밤에 다시 도망갈게 뻔하니 지키고 있다가 다시 잡는 수밖에 없다.
해일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우가 손목을 주무르며 눈치를 보았다. 저 인간 눈을 피해서 어떻게 달아나지? 아니 달아날 수는 있나. 몸 쓰는 거 빼고는 다 자신 있는 한진우였지만 반대로 말하면 몸 쓰는 일에는 젬병이었다.
차라리 저 군인아저씨를 꼬셔서 데리고 가야 하나. 고민하는 진우를 보며 해일이 다시 한번 말했다.
" 진짜 가시면 안 됩니다. 묶은 건 풀어드려도 방밖으로는 못 나오십니다. "
" 와~~ 진짜 독하다 독해. 우리가 그동안 쌓은 정이 있는데 진짜 이럴 거예요? 대원님 실력 좋잖아요. 저 하나 데리고 그 무덤에 몰래 가는 거 어렵지 않잖아요. "
" 어렵습니다. "
" 으아아아아!!!! 거짓말! 거짓말! "
언제 눈먼 총알에 죽을지 알 수 없는 곳이 전쟁터다. 자아가 비대해져 겁을 상실한 놈들치고 오래 사는 놈을 못 봤다. 아주 작은 실수 하나에 십 수 명의 목숨이 사라지는 곳이 전쟁터였다. 해일은 진우의 말을 무시하고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 김해일! 내가 저주할 거야. 평생 결혼도 못하고 혼자 살아라. 이 뺀질아! "
유치한 진우의 저주에 해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단 저 의사선생이 가려는곳이 어떤곳인지 자세히 알아봐야겠다. 운이 나쁘면 정말 같이 그곳으로 갈일이 생길수도 있으니까. 최선을 다해 막아보겠지만은 저런치들은 사고를 쳐서라도 꼭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움직이는 성향이 있다. 해일은 제발 진우가 더 이상 사고를 치지 않기만을 바라며 지도를 펼쳤다.
지도상 한진우가 가려는곳에 아주 오래된 성당이 있었다. 거의 백년은 됨직한 곳이었다. 아마도 사람은 없을테고 성당근처에 그만큼 오래된 무덤이 있었다. 가려는곳이 이곳인가. 전설에 가까운 병을 한진우는 왜 파헤치려고 하는걸까.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은 알겠지만 짐작을 할수 없었다.
예측할수 없는 행동은 사고로 이어질때가 많았다. 해일은 걱정스런 기색을 감추고 완전 무장을했다. 여차하면 한진우를 묶어서 끌고 올 생각으로 밧줄도 챙겼다. 제발 이것까지는 쓸일이 없기를 바랄뿐이었다.
자정에 가까운 시각 문을 살짝 연 진우가 배낭을 매고 밖으로 나왔다. 한참전부터 지켜보던 해일은 진우가 나오자마자 그 모습을 추적했다. 얼씨구 꼴에 또 준비는 철저히 하셨구만. 야간 투시경까지 챙긴 진우의 행동력에 박수를 보내며 해일이 조용히 그를 따라갔다.
언제쯤 그를 잡아야할까 고민하던 해일은 갑작스레 뒤에서 들리는 폭팔음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습격이다. 이렇게 되면 진우를 잡을게 아니라 같이 도망쳐야했다.
놀래서 어버버하는 진우의 뒤를 쫒아가 비명을 지르려는 그의 입을 막았다. 놀라 발버둥치는 진우를 끌고 몸을 숨긴 해일이 그의 얼굴을 보며 쉿하고 손가락을 세웠다. 자신을 잡은 사람이 해일임을 알아챈 진우가 안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대원님. '
' 일단 가려는 곳으로 갑시다. 어서 여길 벗어나야 합니다. '
두려움에 질렸던 얼굴이 순식간에 흥분된 얼굴로 바꼈다. 참 생각하는게 눈에 잘 보이는 양반이야. 해일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떡이며 진우와 같이 병원을 벗어났다.
낮에 지도를 미리 봐두길 잘했다. 어두운 밤길이라 진우가 길을 헷갈릴때마다 해일이 같이 그를 도와주며 성당을 찾았다. 백년전의 성당은 을씨년스럽게 사람의 흔적하나가 없었다. 아니 생명의 기운자체가 안느껴졌다. 오랜 전쟁으로 엉망이 된 곳은 병원만이 아니었다. 이 곳도 폭격으로 담장이 반쯤 무너진체 엉망이 되어있었다.
" 정말 이런곳에 선생님이 찾는게 있습니까? "
약간은 실망한 해일의 말투에 진우가 싱긋이 미소를 지었다.
" 아이고 우리 군인 아저씨도 많이 기대하고 계셨구나. 뭐 드라큐라라도 진짜로 볼 줄 알았어요? 내가 말했잖아요. 여기 있는 건 병에 걸려 죽은 사람들의 무덤이라고요. "
" 무덤. 겨우 이런걸 보러... "
생각외로 너무 시시한 결과에 해일의 목소리에 실망감이 가득했다. 해일이 어떤 생각에 잠겼든 신경쓰지 않은체 진우가 부지런히 움직였다. 성당도 엉망이었지만 근처의 묘지는 더 엉망이었다. 낡은 묘비를 손으로 쓸며 진우가 묘비를 유심히 보았다.
영원한 안식....
무덤을 보며 성호를 한 번 그은 진우가 무언가를 결심한듯 배낭을 내렸다. 뭘 할려고 저러나 쳐다보는 해일의 앞에서 삽을 꺼낸 진우가 땅을 푹 찔렀다.
" 하우우우우~~~ "
몇 번 삽을 파기도 전에 뻗은 진우가 바닥에 누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엉겹결에 진우의 손에서 삽을 받아든 해일이 그를 대신해 순식간에 무덤을 팠다.
처음에는 이거 괜찮은건가 싶었지만 이미 오래된 무덤이고 사람이 아닌것이 묻혀있을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죄책감이 덜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파던 것이 점점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무덤을 판 해일이 옆에 쓰러져있는 진우를 불렀다.
" 선생님. 이리 좀 와보십시오. "
" 네? 벌써 다 팠어요? "
" 네. 다 팠습니다. 여기 뭐가 남아 있습니다. "
해일이 가르키는 곳에 오래전에 죽은 사람들의 뼈가 묻어있었다. 손전등을 킨 진우가 유골을 유심히 보았다. 해골부분 특히 이빨이 있는 곳을 유심히 본 진우가 보통사람보다 뾰족한 이빨을 보더니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 음... 이게 답니까? "
" 일단은요. 흔적을 발견한걸로 만족해야죠. "
" 왜 이러시는건지 물어봐도 됩니까? "
" 되죠. 내가 뭐 언제 비밀이랬나? 저 사실은 희귀병에 관심이 많아요. 뭐랄까 세상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병, 누구도 알지 못하는 병에 대해 관심이 많죠. "
그런걸 대체 왜 관심을 가지는 거죠? 말은 안했지만 해일의 생각을 읽은 진우가 약간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게요. 나도 내가 이럴줄은 몰랐는데.
무슨 병인지도 제대로 알수 없는 병에 걸려 이렇게 희귀병에 관심을 가지게 될 줄 진우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다. 갑작스런 발작과 함께 쓰러지면서 가장 당황한 사람은 진우 본인이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하고 병명을 알고 나면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누구도 진우의 병명을 확인할 수 없었다. 본인이 의사인 진우는 자신이 걸린 병을 누구보다도 더 열정적이게 조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의 증상과 유사한 병도 찾지 못했다. 알지도 못하는 병을 찾아 온갖 희귀병을 다 뒤졌다. 온갖 특이한 병을 다 섞어놓은 자신의 병은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새로운 희귀병이라는 결론을 내릴수밖에 없었다.
진우는 자신을 걱정하는 스승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온갖 희귀병을 다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알게 된 것이 처음 보는 이 병이었다. 어쩌면 이 병에 자신의 병에 대한 실마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해일이 보기에는 진우는 목숨을 도외시하고 움직이는 인간이었으나, 사실 가장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한진우였다. 이 모든 사실을 알지못했던 해일은 학문에 목숨건 미친 의사를 보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무덤을 다시 원상복귀하고 두 사람이 떠난 뒤 한참의 시간이 흐른후 그 자리에 차 한대가 나타났다. 얼굴을 가리고 내린 남자는 창백할정도로 흰 피부를 가진 남자였다. 누군가가 건드린 무덤가를 살핀 남자가 땅을 파더니 남아있는 해골의 입을 보았다. 보통사람보다 길게 난 송곳니를 유심히 본 남자가 다시 유골을 묻고 자리를 떠났다.